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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traino feygei stis ochto(The train leaves at 8)/ 그리스의 감성 Haris Alexiou

happy prince 2013. 9. 24. 12:28

To traino feygei stis ochto(The train leaves at 8 )/Haris Alexiou
 
To traino feygei stis ochto
Taxidi gia tin Katerini
Noemvris minas den tha meinei
Na mi thymasai stis ochto
Na mi thymasai stis ochto
To traino gia tin Katerini
Noemvris minas den tha meinei

카타리니 행 기차는 8시에 떠나가네
11월은 내게 영원히 기억 속에 남으리
내 기억 속에 남으리
카타리니行 기차는 영원히 내게 남으리

Se vrika pali xafnika
Na pineis oyzo stoy Leyteri
Nychta den thartheis s alla meri
Na cheis dika soy mystika
Na cheis dika soy mystika
Kai na thymasai poios tha xerei
Nychta den thartheis s alla meri

함께 나눈 시간들은 밀물처럼 멀어지고
이제는 밤이 되어도 당신은 오지 못하리
당신은 오지 못하리
비밀을 품은 당신은 영원히 오지 못하리
To traino feygei stis ochto
Ma esy monachos echeis meinei
Skopia fylas stin Katerini
Mes tin omichil pente ochto
Mes tin omichil pente ochto
Machairi stin kardia soy ekeini
Skopia fylas stin Katerini

기차는 멀리 떠나고 당신 역에 홀로 남았네
가슴 속에 이 아픔을 남긴 채 앉아만 있네
남긴 채 앉아만 있네
가슴 속에 이 아픔을 남긴 채 앉아만 있네 


 

 

 

 

 

1950년 그리스에서 태어난 Haris Alexiou(해리스 알렉시우)

독특한 허스키 보이스로 그리스 전통음악을 하며 그리스의

국민적 가수로 추앙받고 있다.

 

깊고 약간 쉰듯한 목소리로 그리스 비잔틴 풍의 스타일로 노래하는 그녀는

프랑스,독일,아랍어로 노래를 한다.

 

그녀는 전통적인 포그음악(디모티카)과 오리엔트 도시음악(스미르네이카)을

결합시킨 전통 그리스 스타일의 렘베티카에서 무겁고 기교있는

음악(엔데크나)를 추구한 가수 이기도 하다

 

청중으로 부터 " Haroula (Little Grace)" 로 불리기도 하는 그녀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의 폐막식에서도 노래해 다시한번

그리스의 국민가수임을 확인시켰다.

 

우리에게는 "To traino feygei stis ochto(기차는 8시에 떠나네)"

" 파토마(patoma)" 등이 잘 알려져 있으며 특히

To traino feygei stis ochto(기차는 8시에 떠나네)"

조수미,김지애 등의 우리 가수들에 의해 리메이크 되기도 했다.

 

기차는 8시에 떠나네 - 김지애

기차는 8시에 떠나네 - 조수미

 

 

To traino feygei stis ochto(기차는 8시에 떠나네)

 

이 노래는 그리스 민주화운동의 상징이자 음악가인 미키스 테오도라키스(Mikis Theodorakis)의 작품으로,

그는 이 노래를 작곡한 지 얼마 안 되어 군부독재정권에 의해 투옥되었다가 국외추방을 당한다.

 

우리에게는 SBS 의 드라마 <백야>의 주제가로, 또 조수미가 불러 친숙해진 노래인데,

비장하면서도 애절한 가락에 카테리니라는 기차역을 배경으로 남녀간의 이별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일반적인 이별의 노래가 아니라 반독재 민주화운동가를 애인으로 둔 한 그리스 여성의 이별가다.

11월의 어느 기차역에서애인을 만나기로 했지만,

지중해 연안의 한 작은 도시 카테리니로 가는 기차는 8시에 떠나고 애인은 나타나지 않는다.

아마 그는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잡혀서 투옥되거나,아니면 계속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을 하거나 간에 어쨌든 돌아올수 없을것이다.

그래서 그가 떠난 시간과 공간인 이 11월과 카테리니행 기차는 영원히 기억 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원곡의 가사에는 그가“비밀을 간직한 채”, "가슴에 칼을 품고서” 떠났다고 표현되어 있다.


그리스는 1974년 민주화되기까지 밖으로는 외세의 압박과 안으로는 왕정과 군부독재의 철권통치로 신음해 왔던 나라다.

이러한 그리스의 암울했던 현대사의 한 가운데 서 있었던 사람이 바로 미키스 테오도라키스다.

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아테네 음악원의 학생으로 독일과 이탈리아에 저항하는 레지스탕스 청년운동을 시작하여

수차례나 투옥됨으로써 그리스 현대사의 한 복판에 뛰어들게 된다.

종전 후 왕당파와 공화파 간의 내전이 미국의 지원을 받은 왕당파의 승리로 끝나자 테오도라키스는

귀국 후 그리스 민속음악인 람베티카를 기본으로 민중의 정서를 담은 수많은 가요를 만들었다.

람베티카는 “하층민으로부터”라는 그 뜻이 말해 주듯 피 억압계층의 민요이다.

이 람베티카가 테오도라키스에 의해 저항가요로 부활하자 군부독재는 이를 금지시켰고,

그러자 람베티카는 다시 지하클럽에서 청년계층에 의해 새 노래운동인 네오 키마(Neo Kima)로 발전하게 된다.

1963년 민주화운동의 지도자 람브라키스가 한 괴한에게 암살당하자 테오도라키스는

람브라키스민주청년회(Lambrakis Democratic Youth)를 조직하고 의장으로서 민주화운동을 주도해나간다.

1967년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테오도라키스를 포함한 수천명의 사람들을 체포하거나 추방하였다.

출판과 언론에 대한 검열도 강화해 테오도라키스의 작품판매와 방송은 물론 그의 작곡, 지휘, 연주를 포함해

그의 음악을 듣는 것까지도 금지시켜 버렸다.

테오도라키스는 체포되어 국외망명의 길에 올랐고, 군정이 끝나고 민정으로 이양된 1974년까지

장장 7년간이라는 세월을 해외에서 떠돌아야 했다.

1992년 모든 공직을 사임한 테오도라키스는 작곡과 지휘에 전념하면서 세계의 평화와 인권 운동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데,

1996년 그리스와 터기 양국 간 영토분쟁으로 전운이 감돌 때, 터키의 대표적 음악인 줄푸 리바넬리와 함께 평화지대인

사이프러스에서 평화를 기원하는 공동음악회를 열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줄푸 리바넬리 역시 테오도라키스와 같은 시기에 터키에서 추방당했었고,

이들 두 사람은 해외에서 유랑생활 중 만나 자연스럽게 우정을 다져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