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인 아버지와 이탈리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벨기에에서 태어난 라라 파비안은
이탈리아에서 주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프랑스어와 영어까지 두루 섭렵한 그녀는 자신이
‘유창하지는 않다’고 겸손을 표하지만 어쨌든 스페인어까지 합쳐 4개국어를 구사하는
언어적 재능을 과시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노래와 춤, 피아노 등에 관심을 보인 그녀는 여덟살 때는 벨기에의 브뤼셀
왕립음악원에 입학했고 그 후 10여년 간 클래식적인 소양을 쌓았다.
14세 때부터 아버지의 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그녀는 이 무렵 작곡도
시작했다고 한다.
그녀가 팝에 빠져든 계기는 자신에게 커다란 음악적 영향을 준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
퀸-특히 프레디 머큐리-등 클래식과 팝을 수용한 아티스트들의 음악의 접하면서부터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녀는 곧바로 캐나다 몬트리올로 건너가게 되는데 보수적 성향을 지닌
유럽 지역의 분위기 때문. 갓 스물의 어린 나이에 자신의 레이블과 음악출판 회사를 차린
라라 파비안은 브뤼셀에서부터 알고 지냈던 작곡가 겸 프로듀서 릭 앨리슨과 팀을 이루어
프랑스어 데뷔 앨범을 1991년에 발매하게 된다.
이 앨범은 10만 장이 판매되는 성공을 거두었고 영어 노래를 한 곡 포함한 1994년의
2집 CARPE DIEM은 퀘벡 지역에서만 80여만 장이 팔려나가며 스타로 부각시켰다.
1997년, 프랑스에서만 200만 장이 팔린 그녀의 최고 히트 앨범 PURE으로
프랑스어권에서 빅 스타가 된 라라는 퀘벡 지역과 프랑스 투어에 나서 1998년에는
이 실황을 담은 두 장짜리 라이브 LARA FABIAN LIVE로 차트 정상에 오르게 된다.
이런 그녀에게 레코드 레이블로부터 영어 앨범 취입 제의가 들어온다.
바로 셀린 디온의 소속사인 소니 뮤직. 프랑스어권에서 명성을 날리고 있던 라라에게
비슷한 케이스로 셀린 디온을 키워낸 바 있는 이들이 주목한 것은 당연한 일.
이렇게 해서 마침내 라라의 영어 시장 데뷔 앨범 LARA FABIAN은 탄생하게 되었다.
그간 낸 세 장의 스튜디오 앨범과 한 장의 라이브 앨범을 합쳐 모두 600만 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린 음악 생활 10년째의 중견 아티스트인 그녀의 앨범에는 소속사에서
그녀에게 거는 기대를 말해주듯 쟁쟁한 프로듀서와 작곡자들이 대거 참여했다.
두 말이 필요없는 유명한 작곡가 겸 프로듀서 월터 아파나시에프(Walter Afanasieff)를
비롯해 마돈나 및 핑크 플로이드 등과 작업한 바 있는 팻 레너드(Pat Leonard),
제시카 심슨의 데뷔 앨범에도 참여한 바 있는 보컬 그룹 컬러 미 배드의 전 멤버 샘 워터스
(Sam Watters), 셰어의 빅 히트곡 I believe와 엔리케 이글레시아스의 Rhythm divine
등을 빚어낸 프로듀서 브라이언 롤링(Brian Rwaling), 그리고 라라 파비안의 오랜 지기인
릭 앨리슨(Rick Allison) 등이 참여하고 있다.
앨범에서 역시 가장 주목할 곡은 첫 트랙으로 실린 Adagio.
이탈리아 작곡가 알비노니(Tomaso Giovanni Albinoni:1671-1751)의 작품에
가사를 입힌 것으로 영어 버전과 그녀의 모국어라 할 이탈리아어 버전으로 들려주고
있는데 뛰어난 감정 처리 능력과 클래시컬한 창법을 바탕으로 훌륭한 크로스오버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외에도 앨범에는 순수한 피아노와 기타 사운드 그리고 적절한 프로그래밍이 조화를
이룬 고급스럽고 깔끔한 음악들이 담겨있다.
특히나 귀에 쏙 들어오는 발라드 Part of me와 월터 아파나시에프와 라라 파비안이
함께 곡을 만들고 월터 아파나시에프가 프로듀스한 Broken vow 등등 대중성을 갖춘
작품들이 곳곳에 포진하고 있다.
클래시컬한 느낌이 가미되어 있긴 하지만 색다른 시도도 잊지 않고 있는데
I am who I am과 R&B적 색채가 가미된 Till I get over you 등 미국적 팝 사운드를
가득 담아내고 있는 작품들은 그녀의 다양한 음악적 취향을 엿볼 수 있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