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도 눈물을 흘릴까?
그렇다. 낙타도 눈물을 흘린다.
우리 나라 몽골에는 '모린 호르'(morin huur)라는 전통 악기가 있다.
한국의 ‘해금’처럼 두 줄로 된 현악기이다.
이 악기를 연주하면 신비로운 현상이 벌어진다.
낙타가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어릴 적부터 '모린 호르’ 소리가 들리면
낙타가 운다는 얘기는 어른들로부터 늘 들어왔다.
몽골 사람들에게는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지난 1999년 7월쯤 몽골 남쪽 '돈드 고비'(dond Gobi)
사막 지역으로 여행을 할 때였다.
유목민들이 여러 사람 모여 있었는데,
한 어미 낙타가 새끼에게 젖을 물리지 않아 모두들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저마다 혀를 쯧쯧 차며 새끼 낙타 걱정을 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초원에서 ‘모린 호르’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구슬픈 가락이 들려 왔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어미 낙타가 눈물을 뚝뚝 흘리는 게 아닌가.
몇 미터 떨어져 있었지만 눈물 방울이 선명하게 보였다.
눈물을 흘리던 어미 낙타는 새끼 낙타에 다가가 젖을 물렸고,
새끼 낙타는 주린 배를 채웠다.
그 장면은 신비롭게 보였다기보다는
무척 슬픈 느낌을 주었다.
주변에 있던 유목민들도 모두 숙연한 표정이었다.
어른들로부터 들어 온 얘기를 실제로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지금 다시 기억을 떠올려봐도 애잔한 감흥이 전해져 온다.
모른 체하던 새끼 낙타에게 젖을 물린다, 눈물을 흘리며....
사막 지역에서 사람에게 없어서는 안 될 친구, 낙타는
아쉽게도 모성애가 부족한 편이다.
그래서 종종 어미 낙타는 젖 달라고 보채는 새끼 낙타를
그저 뜨악하게 쳐다만 본다.
그럴 때 몽골 사람들은 ‘모린 호르’를 켠다.
그러면 잠시 깜빡했던 모성애를 되찾고 젖을 물린다.
눈물을 흘리며.
그런 생각이 든다. 몽골 사람과, 낙타에게
‘모린 호르’가 있다는 건 축복이라고.
‘모린 호르’를 연주하면 낙타가 눈물을 흘리는 현상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기란 힘들 것이다.
하지만 몽골에서 전해져 오는 몇 가지 전설은
그 연유를 넌지시 일러 주는 듯하다.
전설 하나.
어느 시골에 가난한 유목민이 살았다.
그에겐 세상에서 둘도 없이 아끼던 ‘검은 왕자’란 이름의 말이 있었다.
세월이 흘러 ‘검은 왕자’는 병이 들어 죽게 되었다.
말 주인은 깊은 슬픔에 빠졌다.
그는 말이 너무 그리워 말의 유해로 악기를 만들었다.
그 악기는 말의 울음 소리와 비슷했고,
주인은 ‘검은 왕자’가 보고 싶을 때마다 악기를 연주했다.
그리하여 ‘모린 호르’가 생겨 난 것이다.
그래서인지 ‘모린 호르’는 말 울음 소리를 아름답게 재현해 낼 수 있다.
전설 둘.
서기 1254년 칭기즈칸이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그는 “내가 죽으면 나의 몸을 보석으로 만든
‘게르’(몽골의 전통 천막집) 안에 100마리의 낙타와 함께 묻어라”고 유언을 남겼다.
백성들이 낙타를 준비했다.
하지만 모두 모아 보니 99마리였다.
칭기즈칸의 신하 한 사람이 멀리 낙타를 구하러 갔다.
어떤 가난한 집에 들렀는데,
얼마 전 새끼를 낳은 어미 낙타 한 마리가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그 낙타를 데리고 갔다.
남겨진 새끼는 어미 품을 그리며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매일 울기만 하다 죽고 말았다.
몽골 사람들은 그런 전설을 통해
낙타가 눈물이 많은 동물이라고 믿고 있다.
[ 초원의 첼로 , 모린 호르 ]
긴 목의 끝 말 머리 모양, 마두금으로도 불려
‘모린 호르’(morin huur)는 몽골인 및
‘부랴트족’(Buryat 시베리아 동부의 몽골족)의 전통 악기이다.
몸체는 사다리꼴이며 긴 목의 끝은 나무로 조각된
말 머리 모양을 하고 있다.
그래서 ‘morin huur’란 이름이 붙여졌다.
‘morin huur’에서 ‘mori’라는 어휘는
‘말’의 의미를, ‘huur’는 '음악'이란 뜻을 품고 있다.
중국에서는 ‘마두금(馬頭琴)’으로 불린다.
‘초원의 첼로’란 별칭도 갖고 있다.
이 악기의 몸체에는 두 줄이 있는데,
연주자는 악기를 두 다리 사이에 끼우고 활로 켜서 연주한다.
활과 줄 모두 말총으로 만들어진다.
몽골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바로 말(馬)입니다.
‘말 위에서 태어나 말 위에서 자라다가 말 위에서 죽는다’는
그네들의 속담이 말해주듯,
말의 젖을 발효시킨 마유주(馬乳酒)를 마시고,
말똥을 말려 연료로 사용하며,
말가죽으로 만든 신발을 신는 몽골민족에게
말은 역사이자 문화이고 생활입니다.
마두금
몽골의 전통 문화예술에서도 말은 빠지지 않습니다.
바로 마두금(馬頭琴)이라 불리는 전통 악기 때문이죠.
마두금은 우리의 해금과 비슷한 찰현악기
(擦絃樂器, 줄을 활로 마찰시켜 소리를 내는 악기)인데,
악기의 끝부분에 말머리 문양을 장식한 탓에 이런 이름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지역이나 부족에 따라 말머리 대신
사람이나 원숭이, 용의 머리 등을 새기거나 아예 아무 장식도 없다고 하는군요.
마두금 독주
마두금은 말머리 장식뿐만 아니라 재료 역시 말에서 가져왔습니다.
마두금에는 2개의 현(鉉)이 있는데,
하나는 숫말의 말총(말꼬리털) 130개 가닥으로 만들고
다른 하나는 암말의 말총 105개로 만듭니다.
소리를 공명시키는 본체는 요즘은 나무로만 만들지만
예전에는 말가죽이나 양가죽을 씌웠습니다.
현을 켜는 활 역시 백마의 말총이 재료이니,
마두금은 말로 만든 악기인 셈입니다.
마두금을 몽골어로는 ‘모린 호르(Morin Khuur)'라고 하는데
’모린‘은 말(馬)을, ’호르‘는 음악을 뜻합니다.
마두금에 맞춰 춤을 추는 몽골 가족
마두금은 몽골민족의 일상생활에서 친숙하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출 때, 아니면 독주를 하거나 합주를 할 때
마두금은 빠지지 않는 악기입니다. 애절하면서도 서정적이고
때로는 웅장하기까지 한 마두금의 음색은
몽골 고유의 정서를 담는데 그만입니다.
마두금은 듣는 이에 따라 몽골의 초원에서 부는 바람 소리,
야생마가 우는 소리, 말발굽이 지축을 울리는 소리처럼 들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초원의 바이올린’ 또는 ‘초원의 첼로’로 불리는 마두금은
유네스코(UNESCO)에서도 그 가치를 인정해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선정했습니다.
말머리가 셋인 마두금
중국에서는 마두금이 한족(漢族)의 해금에서
갈려져 나온 악기라며 주장하지만,
마두금은 오래전부터 투르크 계열 민족을 비롯한
아시아 유목민 사이에서 널리 사용됐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지금도 몽골뿐만 아니라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쪽 유목민에게서
마두금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오랜 세월동안 개량된 마두금은 그 독특한 모습과 음색 덕분에
최근에는 지구촌 곳곳에서 마두금 공연이나
마두금 음악을 손쉽게 감상할 수 있습니다.
세계적인 첼리스트 ‘요요마’는 본인이 직접
마두금을 연주하며 음반까지 냈으니까요.
첼리스트 '요요마'와 마두금
말로 만든 악기답게 마두금에는 말과 관련된 전설이 있습니다.
마두금의 유래에 관한 전설인데,
다양한 스토리로 변형되어 전해집니다.
몇 가지 이야기를 살펴볼까요?
① 초원의 유목민 소년인 ‘수호(Suho 또는 수케 Suhke)’는
초원에서 길을 잃은 하얀 망아지를 발견하고 정성껏 키웁니다.
자라서 늠름한 명마가 된 백마를 타고 경마대회에 출전한
‘수호’가 우승을 차지하자,
그 지역의 관리가 탐욕을 부려 백마를 빼앗아 버립니다.
백마는 ‘수호’를 잊지 못해 탈출을 했지만,
화살을 많이 맞아 그만 ‘수호’ 앞에서 숨을 거두게 되죠.
슬퍼하는 ‘수호’의 꿈속에 백마가 나타나 자신의 뼈와 말총,
가죽으로 악기를 만들고 자신의 머리모양을 새겨달라고 했고,
그래서 만든 악기가 마두금이라고 합니다.